Travelro

트래블로, 안녕. 칭따오君., 인천국제여객터미널, 위동페리, 청도 여객터미널, 청도잔교, 강녕회관,..

트래블로, 안녕. 칭따오君., 인천국제여객터미널, 위동페리, 청도 여객터미널, 청도잔교, 강녕회관,..

:

트래블로, [인도의 넷째날] 진짜 인도를 만나다., 브라마푸트라 아쇼크 호텔, 나가온 어딘가, 아이..



Real India, in Nagaon !


예상치 못한 낙오, 그리고 그로 인해 만날 수 있었던 진짜 인도의 속 모습. 언어는 달라도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경계심이나 호기심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는 '국경을 초월한 우정'이라는

지리한 단어에 대한 이해가 무엇인지 피부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인도 아쌈 지역, 나가온 도시 중심부로

들어가기 전의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에서 가져온 기억 한 묶음들. 나는 아직도 그들을 그리워 하고 있다. 










델리에서 카지랑가 국립공원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델리에서 구와하티 국제공항까지 비행기로 이동하

여 주변에서 1박 후 이른 아침 차를 타고 카지랑가로 향했다. 카지랑가까지는 비행기 편이 없기 때문에

차로 5시간이나 걸리는 길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도 아니면 기차로 2박 3일을 소요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인도 전역의 도로 사정이 좋을리는 없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 위를 작은 차 안에서 꼬박 견뎌내야

하는 길. 도로 개설 작업, 테라코타 수집 작업 등 곳곳에서 나는 공사 먼지 때문에 더워도 창문은 꼭 닫아

야 했다. 에어컨도 최대로 틀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려 속력도 최대로 냈다. 그러던 와중 무엇인가 타는

냄새가 나면서 연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자동차 폭발 보다는 잠시 쉬어가는 것이 낫겠다 싶어,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시골의 도로 한 지점에 차를 세웠다. 그러나 잠시 후 출발하려 할 때, 차는 더 이상 움직

이지 않았다.


카지랑가 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중간 지점. 인터넷도 불가하니 스마트폰의 GPS

시스템을 이용할리 만무했다. 휴대폰도 먹통에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현지 가이드는

전화를 걸어 새 차를 불렀다. 구와하티에서 노가온까지. 우리가 왔던 3시간을 그 버스가 다시 건너오는 것

이었다. 오후에 예정되었던 국립공원 사파리 투어 따위는 싹 잊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 것 일까?

 

구와하티(Guwahati)에서도 엄청나게 떨어져 있고,

 

카지랑가 국립공원에서도 꽤 많이 떨어져 있다.











 


바로 앞에는 아름다운 늪지가 있었다. 물 안에서 무엇인가를 걸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미래, 그러나 아름다운 광경과 새로운 모험에 대한 기대로 기분이 들뜬다. 비로소 여

행의 서막이 올랐다.












이미 주변 민가에서는 외국인이 왔다는 소식이 퍼졌는지, 온통 집 밖에서 우리를 향해 시선을 고정 중이

었다. 우리는 일단 가장 가까운 민가에 들러 화장실을 빌리기로 했다.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건네보았다.

"Bathroom? Restroom?'

사리를 몸에 두른 여인은 손짓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민가의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 뒤를 졸졸 따라왔다. 나는 조금 부담감이 들었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일 뿐, 게다가 남의 집 화장

실에 처음 본 외국인들이 온다면 누구의 기분인들 좋겠는가? 아무리 인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외국인에

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혹시 무례한 일이 아닐까 하여 저어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지판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섰다. (나중에 표지판에 써 있는 영어로 지도 검색을 해

보았지만 해당 지역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약 10분 가량 더 달렸을 때 노가온 시내 중심부가 나

온 것을 보아 그 어디쯤이 아닐까 한다. 구글 맵은 인도에 너무 야박하다.)


생각보다 깨끗한 화장실이 있었다. 좀 전에 코코넛을 사 먹으면서 들렀던 주변 민가에는 화장실이 없었

는데 천만 다행이었다. 우리가 내부 마당으로 들어서자 화장실 바로 옆 방에서, 집안의 큰 어르신으로 보

이는 할머니께서 나오셨다. 나이가 지긋하신 것 같았지만 그녀는 영어를 할 줄 알았고, 우리는 자초지종

을 설명했다. 그리고 흔쾌히, 새로운 버스가 올 동안 우리에게 쉬어가도 좋다는 허락을 내리셨다.











1

응접실로 보이는 곳. 의자를 여러 개 내주어 모두가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민트색으로 칠해진

내부가 아기자기 하다. 인도가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색채'일 것이다. 고유의 의미를 가진 색깔, 혹

은 자신이 좋아하는 화려한 컬러로 옷을 입고 집을 꾸민다.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이 곳이 어디에요?"

"노가온."


Nagaon, Assam, India.

'나가온' 이라고 읽으나 현지어로 '노가온' 이다.












밖에 나가보니 아이들이 쪼르르 모여 우리를 훔쳐본다. 집 안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웃음 꽃을 피우며 우

리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기분 나쁘지 않은 관심이었다. 문득 가족관계도가 궁금해 졌다. 두세명의 부

인, 그들이 낳은 딸들, 그리고 그 딸들의 아이들인걸까? 많이 닮은 아이들, 혹은 조금 다른 아이들의 모습

이 섞여있는데 묘하게도 한 가족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사진을 찍자고 하니 마냥 어색하다. 맨 위의 두 남자아이는 유독 말이 없었다. 생김새를 보면 약간 몽골

계가 섞여있다. 이 지역에는 한국이나 중국계 처럼 생긴 인도인들이 정말 많았다. 아래 사진의 남자아이

와 여자아이는 남매 지간이다. 닮은 구석이 보인다. 귀염성 있게, 또 씩씩하게 나를 향해 웃어주었다.












소년의 나이는 13살. 한국 아이들에 비해 굉장히 외소한 체격이었다.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다고 했지만

배운지 얼마 안 되어서 잘 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그래도 거의 유일하게 가족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통로

역할을 해주었다. 이름을 물어보았는데 너무 길어서 기억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적었던 것 같기도 한데

기억에 희미하다. 바보같이 이름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전화번호는 있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은 학교에 다닌다는 것을 반증하는데, 수 많은 아이들 중 영어를 할 줄

아는 아이는 소년 뿐이었다. 여동생은 9살인가 10살이었는데 영어를 하지 못했고, 소년과 비슷한 또래

로 보이는 남자 아이들도 영어를 할 줄 몰랐다. 혹시 이 집안에서 소년이 대표로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

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사실 그보다도 대체 학교가 어디에 있냐는 것이다. (차로

10분~15분 정도 달리면 번화가가 나오긴 하나 맨발로 걸어다니긴 힘들지 않을까? 물론 나의 관점이다.)











왼쪽 길을 따라 들어가면 화장실이 나온다. 건물이 2개 정도 있는 쾌 큰 민가였다. 오른쪽은 주방의 모습

인가 보다. 초가집 외향을 보고 굉장히 원시적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현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거의 다 갖추고 있었다. 콘센트, 가스레인지, 텔레비전, 라디오, 카세트, 심지어 DVD 플레이어도 있었다.


큰 나무를 부러뜨려 땔감으로 쓰고 있던 것 같다. 불을 지펴 어디에 사용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혹시 아까 그 소년이 이 나무를 부러뜨린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은가?

집에 아이들 말고 다른 남자라곤 백발의 할아버지 뿐이었다.










바쁜 일정, 선블록 만으로는 부족한 듯 하여 햇빛 차단용으로 어제 호텔 웰컴 기프트로 받은 아쌈주 전

통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있었다. 그러자 할머니 한 분이 웃으며 손짓을 하셨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

만 대충 이런 의미인 것 같았다.


'그 스카프. 내가 만들어.'












좁은 통로를 지나 집안 뒤편으로 따라가 보았다. 기분이 좋으신지 연신 미소를 잃지 않으셨던 할머님의

미소가 보인다. 그리고 눈으로 보았다.















아쌈주의 전통 스카프. 그녀는 수작업으로 그 스카프를 만들고 있었다. 옛날로 치면 베를 짜는 모습이다.

놀라운 점은, 베틀(인도에서 부르는 이름은 다르다) 자체도 직접 만든 것 같았다. 인도에서는 공산품보

다 수공예가 더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놀라움이 앞섰다. 정말 장인들의 나라가 아니지 않는가?




베틀로 스카프를 만드는 모습 (short video)

커다란 카메라를 든 외국인들을 위하여 직접 스카프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신 할머니.

인도에서 아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스카프들이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

고 나니 그 값어치는 소중해 진다.











모두에 베틀에 정신이 팔려있던 와중, 소년이 나를 부른다. 손짓하며 집안의 어느 곳으론가 인도했다.

짧게 스쳐지나간 풍경들. 온통 나무의 갈색이 주를 이루었지만, 아기자기하고 매력있는 공간이었다. 집

내부에 따로 문은 없었고, 창에는 커다란 스카프나 레이스를 걸어두었다. 마치 화보 속 세트장에 온 기

분이랄까? 그렇게 따라간 곳은 소년의 방. 아이는 자기의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남매는 같은 방에서 생활했다. 화려한 무늬의 시트가 덮혀있는 커다란 침대에서 둘이 같이 잠을 잔다고

한다. 정말 예쁜 남매다. 어릴 적을 회상해 보면, 남동생과 싸우기 일수였다. 오빠를 둔 친구들이라고 다

를 것은 없었다. 듬직한 오빠가 되어 지켜주거나, 여동생에게 짖꿎은 장난을 치거나. 이 둘은 전자일 것

이다.













직계 동생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막내 동생은 나를 무서워 했다. 흰 피부를 가진 외국인은 태어나서

처음 만나본 것일까? 말을 걸어도 웃지 않았고, 다가서면 어머니의 등 뒤로 피했다. 어머니가 앞에 나서

보라고 등을 떠밀면 우는 소리를 냈다. 괜찮아, 괜찮아 라고. 언젠가 너도 델리의 소년들처럼 흰 피부의

동양 여자를 보면 'I love you!'라며 손 키스를 보내게 될까? 아니, 너는 형처럼 순수하게 자랄 것이다.

 














배가 고팠다. 이른 아침 식사 후 코코넛 쥬스 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카지랑가 리조트에 도착해

점심식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이렇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언젠가 길에서 사두었던 사과를 꺼내 씼는다.

손에 딱 맞는 작은 크기의 사과들이 탐스러운 색을 내고 있다.












정말 탐스럽게 익었다.


한 입 베어무니 상큼했다. 아직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았다. 딱 우리 일행의 숫자에 맞게 사온 것이라

가족들에게 대접할 양이 없었다. 한 입 베어물기는 했지만 사과를 아이들에게 건넸다.


배가 고픈 줄 알았나 보다. 소년은 바나나를 따왔다. 집 안에 사둔 것이 아니라, 나무에 올라가 직접 따

온 것이라고 한다. 약간은 독특한 모양이다. 통통하고 길이가 짧은데, 한 입 베어물어 보니 당도가 그리

강하지 않은 바나나 맛이다. 다만 안에 씨가 꽉- 차있어 먹기에는 조금 불편했다. 그럼에도 하나를 다

먹기에는 배가 굉장히 부른 양이었다.

 

모양은 옥수수에 가깝지만, 바나나와 똑같은 맛이다. 실제 부르는 이름도 'banana'란다. 잠시 후 일행 중

한 명이 장난으로 '코코넛 따와봐' 라고 말을 했는데, 아까 그 소년이 진짜 코코넛을 가져와 버렸다. 

이 아이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만큼 순수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위해 코코넛을

따러 나무에 올라갔다 왔다니 왠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게다가 소년은 칼로 손수 코코넛 껍질을 벗

겨주었다. 우리가 길에서 사먹었던 코코넛과는 달랐는데, 껍질이 연두색인 것은 빨대를 꽂아 즙을 마시고

껍질을 벗겨내면 말랑한 속살이 나온다. 이건 겉이 완전히 황토빛으로 말라있어서 썪은 것이 아닌가 했

는데, 즙은 마실 수 없어도 내용물은 먹을 수 있던 것 같았다. 겉이 연두 빛인 코코넛에 비해 과실도 아주

단단했다. 나는 오히려 이 편이 좋았다.

 

소년이 칼질을 하는 모습이 아무래도 위험해 보이는 터라, 남은 것은 어머니가 대신 해주었다. 순진한 소

년이, 외국인들에게 잘 보이려고 혹시 무모하게 행동하지는 않을까 싶어서. 



과일 속살의 모습. 겉이 황토빛으로 삭았지만 즙이 없을 뿐 맛있는 과실이 들어있다. 과일이라기 보다는

조금 독특한 맛인데, 약간 짭쪼름 하면서도 아삭거리는 맛이 있었다. 게다가 모두 나눠먹어도 남을만큼

양이 꽤 많았다. 이렇게 허기를 달랬는데, 약간 통통하고 퍼머 머리를 한 Mala가 나를 부른다. 

(Mala는 그 곳을 떠나기 전 그녀가 수첩에 적어준 이름이다. 사실 이름이 아니라 성이지만.)


그녀는 유일하게 핸드폰을 가지고 있던 것 같았다. 델리, 콜카타 등 큰 도시에서는 아주 어린 아이들도

모두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곳에서는 그리 흔치 않았나 보다. 그리 구식이 아닌 핸드폰으로 나

와 사진을 찍자고 했다. 거실로 보이는 곳으로 가서 함께 포즈를 취했다.













아름답게 장식된 실내였다. 벽돌로 쌓아올려진 공간이 운치가 있었으며 아름다웠다. 밤이 되면 벌레가

득실일지도 모르겠으나 5성급 호텔보다도 탐이 나는 공간이었다. 사실 외국인으로서, 또 인테리어에 관

심이 많은 젊은 여성으로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대체 이렇게 아름다운 천들은 어디서 구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아무리 달려도 민가 뿐인 시골일지라도, 걸려있는 빨래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하

지만 시내 어디에서도 그런 무늬들은 찾기 힘들었다. 관광객들은 절대로 구할 수 없는 것들 같았다.


벽 한 켠에 걸려있던 사진. 그녀의 남편이라고 했다. 혹시 두 남매의 아버지 일까? 늠름한 모습이었지만

언제적 사진인지도 알 수 없었고, 그저 군인인 남편이 당장 집에 없다는 것만이 분명한 사실이었다.











차 안에 있던 김을 가져다 주었다. 가족 모두 맛을 보았지만, 특히 막내가 가장 좋아했다. 이 외에 자일

리톨 껌도 하나씩 먹어보았다. 받은 것은 많은데 줄 것이 없어서 아쉬웠다. 근처에서 캔디라도 잔뜩 사

올 걸 그랬나 보다.












인도에서 소 만큼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개, 그리고 염소이다. 어디선가 소년들이 아기 염소를 데려왔는데

목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집의 소유가 아닐까 한다. 고기를 먹을 일은 없으니, 젖을 짜서 먹는 것이 아

닐까 생각해 본다. 마치 우리가 강아지나 고양이를 품에 안고 귀여워 하는 것 처럼, 아이들 모두가 번갈

아 가면서 염소를 품에 안고 쓰다듬어 주었다. 근처에서 나뭇잎을 따와 꼴을 먹여주기도 하였는데, 사람

이 먹고 버린 과일 껍데기 등을 주면 잘 먹었다.























물론 개도 한 마리 키우고 있었다. 다가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소년이 말린다. "조심해요. 물어요."

그녀는 어머니 였다. 태어난지 얼마안 된 새끼들에게 젖을 물렸다. 사실 어미도 참 말랐는데 말이다.

그래도 새끼들은 토실토실 하다. 축 늘어진 엄마의 젖을 잘도 빨고 있었다.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이대로 일 백시간이 흘러서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의 침대를 빌려서 잠을 청하고, 지역색이 잔뜩 묻어나는 음식을 먹고. 몸짓으로 이야기 하고. 함께

학교에 가고.









잠시 후, 우리는 또 다른 방에 모였다. 아쌈주의 전통 댄스를 보여주겠다고 해서이다. 침대 한 켠에는

DVD며 CD가 가득하다. 노래가 나오는 부분으로 돌려서 볼륨을 크게 틀었다. 한 마음이 되어, 우리에게

전통 춤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전기가 약한 탓에 계속해서 전원이 나갔지만 순수한 아이들은

계속해서 플레이어를 재생시켰다. 부단히 노력한 결과, 두 소녀의 아쌈 전통 춤을 볼 수 있었다.




나가온 어느 민가의 두 소녀들이 선보이는 아쌈 주 전통 춤 (1)

예쁜 얼굴의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옆집 아이. 남매 중 소녀와 친한 친구 사이였다.

미모가 빼어나 사진 세례를 많이 받았지만 조금은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그래도 다른 아이

들이 워낙 착해서 인지별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전압이 약해서 볼륨을

크게 하니 전원이 내려가는 듯 했다. 갑자기 음악이 끊겨버리니 민망하고 아쉬워 했다.




나가온 어느 민가의 두 소녀들이 선보이는 아쌈 주 전통 춤 (2)

영상 속 성인여성이 유일하게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Mala라는 이름을

알려주었으며, 두 남매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주홍색 티셔츠를 입은 소년은

말이 없었지만 우리에게 춤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텔레비전을 만지며 노력해주었다.












이제 떠나가야 할 시간. 핸드폰을 가지고 있던 Mala는 내 수첩에 번호를 적어주었다.


7399832798

8822080445 (Mala Medhi)

9854452135 (Mala)


모든 가족들이 밖으로 나와서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온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며 손을 흔들

어 주는 모습이 정겹다. 이 곳의 정확한 주소도 알 수 없고, 그들이 적어준 여러 개의 전화번호에 어떻

게 전화를 해야할지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이 곳은 구와하티에서 카

지랑가 국립공원으로 차량 이동 중 반드시 들리게 되는 곳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또 이 곳을 찾게 될 날

이 있을까? 있다면 과연 언제일까? 내가 알지 못하는 수 많은 인도를 포기하고 다시 이 먼 곳까지 찾아

올 용기가 있을까?


다다음 날, 콜카타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구와하티로 돌아오면서 이 곳을 스쳐지나갔다.

버스에 탔던 모든 사람들은 '어어어어!'라는 탄성을 질렀다. 잠시 차를 멈추고 다시 들리고 싶은 그 곳,

인도에 동행했던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따스한 추억을 불어넣어 주었던 곳. 우리는 그 곳을 '노가온의

한 민가'라고 밖에 부를 수 없다.


혼자서는 찾아갈 수 없고 기차를 타도 어디서 내려야 할지 알 수 없다. 자동차를 렌트하고 운전수를 고

용해서 카지랑가로 향하다가 눈에 익은 풍경이 나타나면 차를 세워야 한다. 그러면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 기약이 없는 미래에, 다시 이 곳에 들른다면 소년은 어엿한 청년이, 소녀는 아리따운 숙녀가 되

어있지 않을까? 짧았음에도 그립다. "노가온."



:


코코넛 쥬스를 만들어 주는 모습. 쥬스를 다 마시고 나면, 껍질을 벗겨 속살을 먹을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무엇하나 특별한 것 없는 시골의 한적한 도로.

타는 듯한 냄새가 나더니 갑자기 도로 한 가운데 차가 서 버렸다.



주변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를 관찰하기 시작하는데.


조금은 낯선, 경계의 눈.


 


그들과 나는 어우러질 수 있을까?






















노가온의 한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

다음에 그 진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

트래블로, 인도 3째날. 델리 유적지→구와하티 리버크루즈, 후마윤 묘, 바하이 하우스 오브 워십 ..





 


 

또 아침이 밝았다. 창 밖에는 안개가 뽀-얗게 들어서있었다. 

아쇼크 호텔에서의 마지막 풍경일까. 이제 델리를 떠난다.











짐을 꾸리고. 햇살을 등진 채.











델리의 마지막 일정을 향해 달렸다.












시간상 어제 들리지 못했던 후마윤의 묘. Humayun's Tomb, New Delhi, Delhi, India











입구를 들어서 뒤를 돌아보니 무덤이 아니라 박물관으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놀라울 정도로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던 모든 것. 다 인간이 만든 것이다.

실제로 유적지에서는 내부를 청소하고 보수하는 인력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어딜가나 공사 중인 풍경은 한국의 여느 유명 유적지와 다르지 않다.













잘 정돈된 정원을 걷고 또 걸으면.












진짜 입구를 만날 수 있다. 이 곳을 거치면, 눈 앞에 서 있다.












후마윤의 묘.


타지마할이 아내를 위해 지은 묘라면, 후마윤의 묘는 남편인 후마윤을 위해 아내가 지은 묘이다.

타지마할과 마찬가지로 모든 무굴 건축에는 넓은 정원과 호수가 반드시 존재한다.

이유인 즉, 더운 나라에서 온 이슬람들은 물을 가까이 두고 싶어하여 억지로 궁궐 밖에서 물을 끌어왔다고 한다.

때문에 궁궐 바로 앞까지 물을 끌어들여와 무더위가 심한 날에는 물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저번 여행길로 올린 Red Fort도 마찬가지이고,

앞으로 등장할 많은 여행길들에 건물단지 깊숙이 수로를 끌어들인 유적들이 많다.



묘 건물에서 입구 쪽을 바라본 모습.












내가 방문한 11월 18일에는 서너 학교의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이 곳을 방문했었다.

우르르 몰려나오는 그들이 카메라를 향해 반갑게 미소를 건넨다.


인도에는 몇 가지의 언어가 존재하는데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했다. 그래서 학교에 다니는 이 아이들은 모두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때문에 영어를 쓸 줄 안다는 것은 학교를 다녔다는 것을 반증하는데

거리의 아이들 중에는 외국인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영어를 잘 하는 아이들도 많다.

말하자면, 대한민국 전체 인구보다도 훨씬 많은 인도 사람들은 영어 말하기에 능통하다.












꽤 긴 터널을 거쳐 진짜 묘 안에 들어서게 되었다.

아직 타지마할도 방문해보지 못한 터라 조금 의문이 들었다.

스산할까, 아름다울까, 그것도 아니면 ?












후마윤의 묘. 덩그러니.












그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조심스레 나를 피하는 그녀마저, 아무 것도 이야기 해주지 않았다.












아름다운 문양의 틀에 반사되어 빛이 산란한다. 그들은 수백년간 이 빛과 먼지 속에 잠들어 있었다.











 


뚫려있는 통로로 연결된 또 다른 방에는 3개의 석관이 있었다.












- 누구의 묘 에요?

- 알 수 없어요. 돌에 새겨진 글자들을 그 누구도 해석할 수 없거든요.












건물 내부를 연결하는 창틀에 비둘기 한 마리가 갇혀있었다.

길을 잃은 새, 그리고 알 수 없는 이름을 가진 이들 또한 방황하고 있을게다.








 


돌아나오는 길에는 또 무엇을 쌓고 있었다.

복원인가 증축인가. 인부들은 고요한 움직임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달렸다.

바하이교의 사원을 향하여.













저 멀리 거대한 건축물이 보였지만, 다음 일정을 위해 내부에 들어서지는 못했다.

수 많은 인파로 인해 내부로 들어가기 까지는 줄을 2시간 정도 서야 한다고 가이드는 말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 3개의 민족과 6개의 종교가 어우러진 나라. 하지만 실제로 인도를 거쳐온, 또 거치고 있는 종교는 6개 이상이다. 힌두, 이슬람, 기독교, 불교, 바하이, 자이나, 시크 · · ·

13억의 모든 인도인들은 상대방의 종교를 배타하지 않으며 모든 종교의 자유를 존중해 준다.


문득 용산 전자상가 한 편에서 향을 피워놓고 벽을 향해 절을 하는 세 명의 사나이를 본 기억이 든다.

검은 피부의 그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변 상가에서 일하고 있던 다른 한국 젊은이들은

그들에게 손가락질 하며 '똘아이들' 내지는 '미친놈들'이라며 욕을 하고 있었다.

그래, 생전 처음 타 종교의 행위를 본 이들에게는 조금 무섭거나 이상한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백지 상태의 사람들에게, 크리스쳔들이 눈을 감고 주기도문을 외우며 기도하는 모습도 이상하지 않겠는가?


인도인에게 종교는 선택이 아니다. 그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부모의 종교를 물려받고 살아간다.

때문에 소수 종교를 가진 이들일지라도 종교를 이유로 비난 받는 이는 없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은 태어나면서 부모 이전 세대부터 부여된 종교적 의무와 철학을

확고하게 지키며 살아간다는 점이다. 죽을 때 까지,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주변의 누군가 종교를 빌미로 특정 음식섭취나 행위를 거부한다면, 우리 중 대개는 얼마나 그를 비웃겠는가?  

'독실한 크리스쳔 이네요.' 라는 말은 흔하지 않다.












다시 공항에 도착했다. 아쉬운 델리에게 작별을 고하러.


미리 호텔에 부탁해 아침에 받아온 샌드위치 박스다.


두툼하고 먹음직스러운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구와하티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인도에서 들렀던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오후 5시가 되면 이미 어둠.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살펴보지 않으면 부질없다.












델리 공항에 비해 참 소박했던 구와하티 공항의 전경.

오토릭샤 숫자가 델리보다 적어서 일까? 숨을 한껏 들이마시니 공기가 청량하다.

이 곳에는 사람이 끄는 인력 릭샤들도 많이 보였다. 










 

구와하티 아쇼크 호텔. 공교롭게도 델리에서부터 아쇼크 그룹의 호텔에만 머물게 되었다.

 


하지만 같은 계열사일지라도 인테리어는 완전히 상이했다.

비교적 모던했던 델리 아쇼크 호텔과는 달리, 구와하티 아쇼크는 전원적이고 따뜻한 느낌.


만일 호텔에 머물게 된다면, 대부분 웰컴 과일이 객실 내에 있는데 일정에 지쳐 안 먹는 경우도 꽤 많다.

이럴 때에는 과일을 그냥 놔두고 오기 보다는, 작은 봉투에 싸와서 주변 아이들에게라도 주는 것이 어떨까.

동정이라기 보다는, 나눔의 방식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1달러로 하루를 살아가는 인구가 3억인 곳이다.











 

오후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어느 덧 달이 휘청거렸다.

 저녁식사를 위해 리버 크루즈에 올랐다.












인도에서의 크루즈라니, 어떤 기분일까 너무 궁금했다. 한강 유람선 이후 선상 파티는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아직 공사 중인 곳도 있었고,

구와하티 아쇼크 주변 자체가 큰 도시는 아니기 때문에 주변 경관도 고요하다.

식사 및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것 같은 크루즈 내부의 모습이다.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한강 유람선을 탔을 때의 인테리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꼈으니, 그리 나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낮에 보면 이런 모습이라고 한다.

 

 

 

신기했던 것은,


디제이 턴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다.

굉장히 만져보고 싶었으나, 그들에게 소중할 것 같아서 만지지 않았다. :)












이 선실을 빠져나온 야외 선상에서 저녁식사가 이루어 진다.

벌레도 거의 없었고, 음식도 맛있었다. 특히 애피타이저로 계속 나오던 닭강정 같은 요리가 참 맛있었다.

이 닭 튀김들은 종류를 달리하여 계속 조금씩 제공되더라.














크루즈 출발 전, 배 아래로 내려다 본 풍경들.

원래 리버 크루즈는 오후 5시쯤 마지막 승선이 이루어지는데, 이 날 특별히 7시가 넘은 시간에

크루즈를 운영해주셨다고 했다. 어쩐지, 주변이 너무 컴컴하여 이게 크루즈인지 뭔지 싶었다. 하하,


일몰 시간(약 5시 가량)에 맞춰 크루즈에 승선하면

주변의 자연경관과 소박한 집들이 아름다운 노을에 물든 모습을 감상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거대한 줄기를 이루고 있는 강물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강의 이름브라마푸트라.

거대한 삼각주를 이루어, 다음 목적지인 카지랑가에서도 볼 수 있는 강이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사진으로 남기지는 못했는데,

크루즈가 지나가는 강 한 가운데에 피콕 아일랜드라는 사람이 살지 않는 자그마한 섬이 있는데

수 백마리의 공작들을 볼 수 있어 매우 절경이라고 한다.

뒤늦게 구와하티에 도착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였다.

리버크루즈 관련 정보는 아래에 자세히 쓰겠다.












지나치던 어느 집에서는 가족들만의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소박한 웃음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크루즈를 빠져 나오면서, 한 켠에 마련된 시바신을 볼 수 있었다.

혹시 조악한가? 내 눈에는 미친 듯이 아름답다.












크루즈를 마치고 호텔에 들어와 웰컴 기프트를 꺼내보았다.

구와하티라는 도시는 행정적으로 아쌈주에 속해있는데, 저 모자와 스카프는 아쌈주 전통 의상 격이랄까.

(리버크루즈 선실 내에도 저 모자가 걸려있던 것이 사진 속에 자그마하게 보인다.)

스카프에도 모자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쌈 주 전체에서 아주 똑같은 무늬를 쓰지는 않는다.)

오른쪽 Tea와 자료집은 구와하티 관광청 담당자 분께서 선물로 주셨다. 생각지도 못하게.

티백 타입이 아니라 아직 차 맛을 보지 못했지만, 사실 포장이 예뻐서 먹기 아까울 지경이다.












모자를 쓰고 한 컷. 이렇게 오늘 하루도 막이 내린다.

 

 

 

 

 

 

 

 

 

 

Information

by incredible india! 

 

[후마윤의 묘]

위치: 남부 델리, 니자무딘 동쪽에 위치 (높이: 43m) 

설계: 미락 미르자기야스(Mirak Mirza Ghiyas)

후마윤의 부인 '하지 베굼(Haji Begum)의 지시로 건설.

1565년 완공. 타지마할에 많은 영향을 준 무덤.

 

[바하이 사원]

바하이교: 이슬람교의 한 분파

위치: 뉴델리

1986년 완공. 전 세계의 바하이 사원 중 가장 아름다운 곳.

사원 주위에 커다란 연못 아홉개가 있으며,

활짝 핀 연꽃 모양이라 '연꽃 사원'으로도 불림.

 

[리버크루즈]

정식명칭: Alfresco grand (a unit or brahmaputra cruise)

연락처: +91 97067-12131, 94355-58004, 0361-2600244

이메일: bcplcruise@gmail.com

웹사이트: www.brahmaputrarivercruises.com

탑승위치: Machkhowa, Guwahati -781009(Assam)

 

[구와하티 아쇼크 호텔]

more photo: http://blog.naver.com/soulswings/117614379

:

트래블로, 인도의 둘째날. , 아쇼크 호텔 , 랄킬라 (붉은성, 레드 포트), 잔파트, 고니 한식당..










인도의 첫 번째 아침이 밝았다. 지금 내가 깨어난 이 곳에 대한 현실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어쩌면 그저 일상처럼 행동했던 것 같다. 태어나서 내 의지로 이동한 곳 중 가장 먼 곳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몽롱한 듯 변함없이 아침을 받아들였다. in Ashok hotel, New Delhi, India.













오전 9시, 첫 번째 목적지는 Red Fort Complex. 일명 '붉은 요새'다.














많은 것들이 인도의 하늘을 차지하고 있었다. 땅에서 시선을 조금 높이면 방향감각을 잃은 채 현기증이 돌았다.

어렸을 적 누군가의 사진으로 보았던 것들을 이제 내 카메라로 담는다.















화려하거나 혹은 낡았거나. 그들에 대한 인상.

주저하거나 혹은 미안하거나. 그들에 대한 예우.



















입구에 들어서기 전, 광장에서 볼 때는 온통 붉은 빛이다.

하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서면 상아색의 돌로 지어진 건물이 대부분 이다.

정교하고 세심했으며 또 웅장하면서도 인간미가 엿보였다.













 



드높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과거의 어떤 이가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아직 여행 초입이라서 였을까, 한국보다 그런 느낌이 강렬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서는 만국 공통이었다. 12살 때, 입장불가인 내부를 채우고 있던 무령왕릉의 빼곡한 글씨들 처럼.













아니, 누군가 웅크린 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높이 올려다 보면.














벗겨진 칠을 메우고 있었지만, 거부감은 없었다. 순백색이 아닌 은은하고 따스한 빛깔이 좋았다.

아니, 실은 그 붉은 얼굴을 가리려던 것일까?













나무는 전설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전설 속에 살고 있다.















붉은 요새로 가기 위한 터널, 안쪽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는 상점들에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했다.
눈을 뗄 수 없는 것들에게서 억지로 눈을 뗀 뒤, 더욱 많은 것들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Janpath, Cannaught Place, New Delhi, Delhi, India
그녀들은 간곡히 애원했지만 내게는 용기가 없었다. 첫 여행의 아쉬움은 '다음'을 기약하고 말았다.














아쇼크 호텔 내부에 있는 한식당. 큰 도시가 아니라면 한국음식을 맛볼 수 없단다.
육식을 즐기는 이가 거의 없는 인도에서 맛보는 삼겹살은 조금 독특한 맛이다. 실제로도.












호텔 내부의 은행에서 달러를 루피로 환전. 한참 기다렸더니, 적은 단위의 돈이 없단다.
인도 아저씨니까, 뭐. 이해해버렸다.










그리고 쿠뜨미나르로.











전쟁의 상흔이 느껴지던 그 곳의 돌들을 차마 손으로 만져볼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던 너희들은, 어째서 그렇게 서로 떨어진 채로 누군가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니.












너에게 나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조각일 뿐.
 











웃고, 찡그리고, 젖고, 바라보고, 느끼고.










12억 인도가 모두 헐벗은 줄 알았다면.



인도의 청담동이라 불리우는 칸 마켓. Khan Market, New Delhi, India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브랜드 숍들과 아기자기한 카페, 기념품점들이 늘어서 있다,




















몇 번이고 길을 익힌 후, 홀로 방황했던 그 거미줄 같이 이어진 거리.
나는 150달러를 쥐고도 왠지 쉽사리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했다. 아쇼크 호텔 내부의 고급 인도 레스토랑 Frontier.






















그리고 8일 동안 매일 맛볼 수 있었던 인도 전통음료 라씨(Lassi).










녹화된 필름을 재생하 듯 빠르게 하루가 지나가 버리더라.
조금은 친숙해졌고, 또 꿈틀거리고 있었다.

겨우 하루였다.
 
 
 
 
 
 
 
 



 
 
 

 

Shop Information

인도의 청담동, 칸 마켓에서 구입한 물건들의 장소를 소개하겠다.

(위의 모든 것이 칸 마켓 상품은 아니다.)

 

Religare Wellness Limited

59 A, Ground Floor, Khan Market, New Delhi, India

히말라야 립밤 6개 구입 (20Rs 씩)

히말라야 헤어 오일 구입 (125RS)

올레이 화이트닝 나이트 크림 구입 (449Rs)

 

Anand Book Sellers&Stationers

25-B, Khan Market, New Delhi-110003, India

011-24698238, 011-24628238

나무 조각 3개 구입 (100Rs 씩)

수첩 4개 구입 (얇은 것 80Rs 씩, 코끼리 문양 수첩 100Rs) 

 


: